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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서양 신사복의 어제와 오늘 - 신사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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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8-14 14:59 조회2,9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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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신사복의 어제와 오늘 - 신사복의 역사 上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오늘날 우리가 입고 있는 신사복도 어느 한순간에 우연히 생겨나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사복을 포함한 의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히 외부 기후로부터 몸을 보호하거나 알몸을 가리기 위한 실용성을 넘어,

계급의 높낮이를 드러내는 상징성,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성, 소속된 사회나 개성을 나타내는 정신성 등 복합적인 기능과

의미가 내재되어 시대 혹은 지역에 따라 각양각생의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비롯된 현대적 형태의 신사복




 

남성의 옷이 지역마다의 차이를 극복하고 오늘날처럼 전 세계인들이 두루 입는 형태의 <신사복>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인류의 기나긴 복식 역사에 견주어 볼 때 아주 짧은 시간 전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 사건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모든 정치와 경제, 의복양식을 포함한 모든 문화를 누리고 있었던 것은 극소수의 왕족과 세습 귀족들뿐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은 그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자본가 시민 계층을 만들었으며, 그들은 귀족들의 생활이며 의복양식 등을 본받아 나름대로의 품위와 실용성을 겸비한 복식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이른 시기에 종교와 정치, 군주와 백성간의 갈등에서 벗어나 산업혁명으로 야기되는 계급사회의 재형성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던 영국 사회는 복식문화의 주인이 소수 왕족과 귀족에서 시민으로 변화하는 결과를 얻었던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식민지로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이름을 떨치면서 그들의 정치제도, 사회규범, 문화양식 등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복식문화 역시 세계 공통의 것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산업혁명과 새빌로우(Savile row)가




 

우리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의 신사복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전에 비롯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처음 100여년간은 형태적 실용화 과정을, 그 후 100여년간은 전 단계에서 완성된 형태를 다향한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패션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이전에 귀족들이 입었던 멋들어진 옷, 레이스천이나 무늬를 넣어짠 비단, 길게 늘어지는 망토 같은 것들 대신에 보다 실용적인 모양의 옷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데 기여했습니다. 18세기 말에 등장한 커트 인 코트(Cut in Coat)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레이스나 무늬 같은 장식을 과감히 배제하고 근엄함을 강조한 디자인입니다.

 

19세기 초반에는 보다 실용적인 형태의 프록 코트가 처음 등장합니다. 바지의 형태도 몸에 꼭 끼는 홀태바지 모양의 판탈롱에서 벗어나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트라우저즈(Trousers)가 일반화되기에 이르렀으며, 1845년 재봉틀이 발명되고 양복산업이 크게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의복의 실용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됩니다.

 

런던 새빌로우(Savile row)가의 양복점들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수의 멋쟁이 귀족들을 단골로 확보하는 한편 군인, 대학생들의 단체복을 도맡아 품질과 디자인을 경쟁하게 되는데, 그 덕택에 신사복은 양과 질 모두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시민계층이 두터워지고 젊은이들까지 새로운 형태의 신사복을 받아들여 입게 됨에 따라 웃옷의 기장이 짧아진다든가 상의, 조끼, 바지를 모두 같은 옷감으로 짓는 등 당대에 파격에 속했던 일들이 거듭 행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1837년~1901년)에 오늘날 우리가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근엄하면서도 실용적인 신사의 워드로브(Wardrobe)가 완성되기에 이릅니다.

 

 

 

 

에드워드 시대의 황금기 그리고 윈저 공





여기까지가 신사복 발전의 전기 100년이라고 한다면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 에드워드 7세(1901~1910년 재위) 중심의 사교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가 후기 100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도덕적인 예절과 근엄함이 중시되었으나 에드워드조가 시작되면서 과거의 경직된 문화와 대비되는 개방적인 풍조가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패션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어 신사의 워드로브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황금기의 정점을 이룬 것이 조지 5세(1910~1936년 재위)와 윈저 공입니다. 조지 5세는 옷을 입는데 남다른 감각을 지녔고, 오늘날의 바지 앞쪽 주름 선을 창시한 사람이었습니다. 앞주름 선의 바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젊은 세대의 상징이 되었으며, 바지의 통이 넓어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의 옷 입는 법을 흉내내는 것이 귀족의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조지 5세의 아들 윈저 공은 왕세자 시절부터 그의 패션과 거기에 얽힌 화제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궁정외교가 성행했던 당시, 왕세자로서 그가 해낸 외교적 역할은 적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선사절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그런 그의 옷차림이 신문과 잡지, 기록 영화 등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그가 입었던 옷차림은 점잖든 파격적이든 그대로 정석으로 받아들여져 귀족은 물론 세계 각지의 비즈니스맨들에게 대유행했습니다.

 

그는 글랜체크 무늬를 정장으로 입어 귀족사회를 놀라게 했고, 윈저 놋트라는 넥타이 매듭법과 깃 사이가 넓은 윈저 칼라셔츠를 고안해냈으며, 트위드 재킷을 평상의 외출복으로 개량해 입었습니다. 또한 패터 온 패턴, 즉 서로 다른 무늬를 겹쳐 입는 코디네이션 방법을 처음 창시하는 등, 수많은 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의복 사상 최고의 멋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남성의 옷차림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꽃핀 남성복 문화를 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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